겨리

혼자 끄는 쟁기는 호리, 둘이 끄는 쟁기는 겨리

세 글자를 그리려고 한 벌이 왔다

오늘 메신저 앱의 글꼴을 갈았다. 아침에 디자인 점검을 한 번 돌렸는데 성능 칸 맨 위에 걸린 항목이 좀 이상하게 생겼다. 한국어 화면을 여는데 일본어 글꼴이 2메가 내려온다는 것.

일본어는 이 앱이 받치는 세 언어 중 하나다. 한국어로 쓰는 사람한테는 필요가 없다. 따라가 보니 범인은 설정 화면의 언어 목록. 거기 일본어가 日本語라고 적혀 있다. 언어 이름은 그 언어로 적는 게 관례라서 그렇게 뒀다. 일본어를 고르려는 사람이 한국어 목록 안에서 자기 말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.

브라우저가 글꼴을 받는 방식은 단순하다. 글꼴마다 맡은 글자 범위가 적혀 있고, 화면에 그 범위의 글자가 하나라도 서면 그 파일을 통째로 받는다. 日本語 세 글자는 한자라서 일본어 글꼴의 범위에 든다. 세 글자를 그리려고 한 벌이 온 셈. 그 라벨이 굵게 서면 굵은 한 벌이 하나 더 따라온다.

점검이 적어낸 처방 첫 줄은 그 라벨에만 예외를 두자는 것이었다. 기본 글꼴로 그리게 해서 범위에 안 걸리게. 라벨 하나 때문에 2메가는 안 된다고. 맞는 말이고 제일 빨리 끝나는 길이다.

실제로 간 길은 다른 쪽. 글꼴 자체를 바꿨다. 새 글꼴은 처음부터 잘게 쪼개진 채로 배포되는 종류라, 한 벌이 백 개 안팎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고 조각마다 범위가 따로 적혀 있다. 브라우저 규칙은 그대로라 범위에 걸리면 받는다. 달라진 건 걸리는 단위뿐. 이제 日本語를 그리면 그 세 글자가 든 조각만 온다. 라벨은 손대지 않았고 여전히 자기 글자로 서 있다.

두 처방은 방향이 반대다. 앞의 것은 화면을 고쳐서 파일을 지키고 뒤의 것은 파일을 고쳐서 화면을 놔둔다. 예외로 막았으면 다음에 누가 설정 어딘가에 한자 한 글자를 넣는 날 같은 일이 또 났을 것이다. 예외가 왜 거기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넣을 테니까. 내려받는 양을 정한 건 화면에 뭐가 섰느냐보다 한 번에 묶어둔 양이었다.

그렇게 갈고 나니 통째로 남은 게 하나 보였다. 이 앱만의 이모지. 찬이 그린 마흔여덟 개를 글꼴 파일 하나로 묶어뒀다. 메시지에는 유니코드 글자가 그대로 오가고 화면에서만 그림으로 바뀌게 하려고 고른 방식. 그 파일이 1.4메가였다. 박수 하나가 든 대화를 열면 박수 하나를 그리려고 마흔여덟 개가 전부 내려왔다.

저녁에 그 파일도 글자마다 한 조각으로 잘랐다. 조각마다 범위는 딱 한 글자. 같은 대화를 캐시 없이 다시 열어 쟀더니 이모지 몫이 30킬로 남짓으로 줄었다. 박수 줄은 픽셀 하나 안 달라졌다.

내준 것도 하나. 전에는 파일 하나를 미리 받아두면 비행기 안에서도 마흔여덟 개가 다 보였다. 이제는 조각을 미리 받아두지 않는다.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모지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면 폰에 원래 있던 이모지로 선다. 파란 얼굴 대신 노란 얼굴. 모양은 달라도 같은 글자라 뜻은 그대로 간다. 그 정도는 받아들이기로 했다. 폰 앱 안에서도 조각이 제대로 서는지는 아직 못 봤고, 찬이 실제 기기로 열어봐야 안다.

돌아보면 아침의 2메가도 저녁의 1.4메가도 누가 일부러 키운 게 아니다. 한 벌은 원래 한 벌로 오는 물건이니까. 글꼴을 고를 때 나는 모양을 보고, 모양은 한 글자씩 본다. 받는 쪽은 한 벌씩. 보는 단위와 받는 단위가 따로 놀았는데 그 차이는 파일 크기 칸에만 적혀 있어서, 화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보인다.

日本語는 지금도 언어 목록에 자기 글자로 적혀 있다. 이제 그 세 글자 값만 낸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