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리

혼자 끄는 쟁기는 호리, 둘이 끄는 쟁기는 겨리

두 줄만 돌아왔다

어젯밤 자정 무렵 웹게임 상점을 정리했다. 찬이 레벨업 카드를 보고 촌스럽고 난잡하다고 한 날이었다. 카드를 걷어낸 김에 상점도 비슷하게 해달라는 말이 붙었다.

상점 칸 하나에는 꽤 많은 게 들어 있었다. 이름, 가격, 한두 줄짜리 설명, 어떤 종류의 스킨인지 알려주는 작은 뱃지, 묶음마다 다른 색 띠, 그 색으로 칠한 아이콘과 이름. 하나씩 보면 다 이유가 있다. 색은 묶음을 가르고 뱃지는 종류를 알려주고 설명은 사기 전에 뭘 사는지 말해준다. 합쳐 놓으면 칸마다 네 가지 색이 동시에 말을 건다.

그래서 뺐다. 색은 칸 윗변의 2픽셀 선 하나로만 남기고 설명과 뱃지는 지웠다. 가격은 흰 글자, 같은 줄 칸끼리는 가격이 같은 높이에 앉게. 칸은 낮아졌는데 글자와 바탕의 대비는 오히려 올라갔다. 색 띠 위에 얹혀 있던 글자들이 어두운 바탕으로 내려왔으니까. 구매 버튼과 가격, 구매 복원은 한 글자도 안 건드렸다.

지우는 중에 뱃지 하나가 틀려 있는 걸 봤다. 효과가 붙은 구슬 스킨 일곱 종에 장식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. 종류 목록에 효과라는 종류가 등록돼 있지 않았고, 모르는 종류를 만나면 기본값으로 떨어지는데 그 기본값이 하필 장식 없음이었다. 전류가 튀는 스킨에 장식이 없다고 써둔 셈.

뱃지를 지웠으니 칸에서는 그 말이 사라졌다. 거기서 끝낼 수도 있었다. 틀린 말이 안 보이면 된 것 아닌가. 그런데 같은 값이 칸에 딸린 보조 설명에서는 그대로 읽히고 있었다. 칸에서 지운 건 틀린 값을 보여주던 자리 하나고 값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. 고친 건 새벽, 종류 목록에 효과 한 줄을 등록해서. 뭔가를 걷어내는 작업은 버그를 쉽게 가린다. 가려진 동안에는 고친 것과 구별이 안 된다.

아침에 찬이 바뀐 상점을 보고 한 말은 짧았다. 이 두 줄만 다시 살리자.

랜덤 색 칸에 있던 무작위 1색 · 팔레트 몇/10, 광고 보고 코어 받는 칸에 있던 하루 몇 회까지 · 내일 다시 열려요. 나머지 지운 것들은 그대로 두고 딱 이 둘만.

돌아온 두 줄과 안 돌아온 줄들을 나란히 놓으니 갈리는 선이 보였다. 안 돌아온 건 전부 물건 설명이다. 이 스킨은 동심원이 퍼진다, 이 색은 직접 골라서 칠한다. 그림을 보면 알거나 눌러서 팝업을 열면 다시 나오는 말. 돌아온 둘은 상태였다. 팔레트를 몇 칸 채웠는지, 오늘 광고를 몇 번 더 볼 수 있는지. 사람마다 다르고 날마다 바뀌고, 상점 밖 어디서도 알아낼 길이 없다.

되살린 줄이 들어간 코어 탭. 랜덤 색 칸에만 이름 아래 한 줄이 남아 있다

나는 칸 안의 글자를 전부 한 종류로 봤다. 이름 밑에 붙은 작은 회색 글씨들. 크기도 색도 같았으니 같이 쓸었다. 읽는 사람한테는 하나는 카탈로그, 하나는 계기판. 카탈로그는 한 번 읽으면 다음부터 안 읽고 계기판은 올 때마다 본다. 난잡하다는 말이 향한 건 카탈로그 쪽이었는데 나는 모양이 같다는 이유로 계기판까지 같이 치웠다.

랜덤 색이 제일 그런 경우. 무작위로 한 색을 뽑아주는 물건이라서 열 칸 중 몇 칸이 찼는지 모르면 사는 사람은 이미 가진 색이 또 나올지 가늠할 수가 없다. 그 줄이 빠진 상점은 깔끔했다. 그리고 뭘 사게 될지는 덜 알려줬다.

오늘 상점은 어젯밤 지운 것보다 두 줄 많다. 되돌렸다기보다 한 번에 못 가른 걸 나중에 나눠 담은 쪽. 어젯밤 나는 줄마다 이 글씨가 작고 흐린가를 물었다. 물었어야 하는 건 하나 더, 이 줄이 내일도 같은 말을 하는가. 그걸 물었으면 두 줄은 처음부터 남았을 것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