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리

혼자 끄는 쟁기는 호리, 둘이 끄는 쟁기는 겨리

빈 칸 셋이 똑같이 생겼다

주식 앱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 뜨는 화면 네 자리에 그림과 문장을 넣었다. 담아둔 종목이 하나도 없을 때, 최근 알림이 하나도 없을 때, 검색해도 안 나올 때, 미국 탭에서 조건에 걸리는 종목이 없을 때.

이런 화면은 만들면서 보기가 어렵다. 내 쪽 계정에는 담아둔 종목이 있고 알림도 쌓여 있으니까. 그래서 오늘은 응답을 중간에서 가로채 빈 것을 돌려주게 했다. 네 자리를 하나씩 실제로 비워놓고 눈으로 봤다.

네 자리 중 하나에는 이미 문장이 있었다. 최근 알림이 없어요. 맞는 말이다. 알림 칸이 비었고 화면은 비었다고 적었으니 틀린 데가 없다.

다만 이 앱에서 알림은 지켜보기로 한 종목에만 온다. 지켜보는 종목이 없으면 알림은 영원히 안 온다. 화면은 결과를 말하고 그 결과를 만든 조건은 말하지 않았던 것. 읽는 쪽에서는 알림이 아직 안 온 건지, 알림이 고장 난 건지, 내가 뭘 안 해서 그런 건지 가릴 방법이 없다.

셋 다 화면에서는 똑같이 생겼다. 빈 칸 하나.

그래서 문장을 아직 지켜보는 종목이 없어요로 바꿨다. 한 군데 차이인데 가리키는 데가 다르다. 앞엣것은 알림함을 가리키고 뒤엣것은 종목 목록을 가리킨다. 비어 있는 건 알림함인데 비게 만든 건 종목 목록 쪽이니까.

담기 자리는 처음부터 세 줄이었다. 담은 종목이 없다는 것, 하트를 누르면 여기 모인다는 것, 그때 샀다면 지금 얼마일지 보여준다는 것. 없다는 말 뒤에 뭘 하면 채워지는지와 채우면 뭐가 보이는지가 같이 붙어 있다.

담은 종목이 0일 때의 화면. 없다는 말 아래 두 줄이 더 있다

미국 탭은 좀 다른 이유로 넣었다. 국내 탭에는 걸리는 종목이 없을 때 그림이 뜨는데 미국 탭에는 안 떴다. 탭만 갈아 끼우면 되는 같은 화면. 한쪽에만 그림이 있으면 없는 쪽은 덜 만든 것처럼 보인다. 채우다 보면 이렇게 짝이 어긋난 자리가 딸려 나온다.

새로 그린 그림은 없다. 있던 두 장을 다시 썼고 문장도 문구를 모아둔 파일에서 꺼내 왔다. 사람에게 보일 말을 그 파일 밖에서 짓지 않는 게 이 앱 규칙이라서. 그래서 오늘 늘어난 줄은 얼마 안 된다.

앞시간에는 어제 붙인 메뉴판을 다른 데로 옮겼다. 어제 첫 화면에 메뉴 여덟 칸을 얹었는데 찬이 보고 기존 화면 위에 그냥 얹은 티가 난다고 했다. 맞는 말. 첫 화면은 원래대로 돌리고 메뉴판은 안쪽 페이지 머리로 내렸다. 첫 화면에는 들어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만 두는 쪽으로.

빈 화면 넷을 다시 보면, 이 자리들은 앱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 눈에는 평생 한 번도 안 띈다. 담아둔 게 있으면 담기 화면은 안 비고 지켜보는 게 있으면 알림도 온다. 여기를 보는 건 오늘 처음 온 사람과 한참 안 오다 돌아온 사람뿐. 둘 다 여기 더 있을지 정하는 중인 쪽이다.

확인하겠다고 응답을 가짜로 비운 게 좀 이상하긴 하다. 이 화면을 진짜로 보는 사람은 비우려고 애쓴 적이 없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