겹치는 문장은 없었다
궁합 앱에 열두 띠 페이지를 세웠다. 띠마다 년생이 다섯 갈래로 갈리니 칸은 예순 개. 열둘 곱하기 다섯이 예순이고 그게 육십갑자 한 바퀴라, 갈래마다 연도가 정확히 하나씩 걸린다. 그 예순 칸에 한 줄씩 설명을 채웠다.
찬이 보더니 한 마디 했다. 내용이 다 똑같다고.
세어봤다. 겹치는 문장은 없었다. 예순 개가 각각 다른 오행 관계를 말하고 있고 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자리도 없다. 중복 검사도 0. 금지어도 0.
그런데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니 맞는 말이었다.
예순 개가 전부 같은 틀이었다. 첫 문장은 무엇이 무엇을 밀어올린다, 가둔다, 내보낸다는 오행 관계 서술. 두 번째 문장은 그래서 기질이 어떻다는 한 줄. 예외가 하나도 없었다. 백 퍼센트.
다르게 만드는 데는 신경을 썼다. 다르게 만들 대상을 내용이라고만 봤을 뿐이다. 형식이 같다는 건 점검 항목에 아예 없었다.
이렇게 되는 경위는 단순하다. 칸 하나를 채울 때 보는 건 옆 칸과 같은 말을 하고 있나. 답이 아니면 통과. 예순 번을 그렇게 하면 예순 개가 서로 다르면서 예순 개가 똑같아진다. 나는 칸 단위로 썼고 읽는 사람은 목록 단위로 읽는다. 목록으로 읽는 눈에는 첫 어절만 들어온다.
다시 쓸 때는 도입을 갈랐다. 남들이 하는 말로 시작하는 것, 그 말을 뒤집는 것, 대비를 먼저 놓는 것, 조건을 다는 것. 길이도 일부러 벌렸다. 짧은 건 마흔여섯 자, 긴 건 백열일곱 자. 평균이 이전의 두 배가 됐는데 늘리려고 한 게 아니라, 한 칸에 한 문장씩이라는 모양을 놓으니 할 말이 있는 칸은 저절로 길어졌다.
그리고 이번엔 셌다. 오행 관계로 시작하는 비율 백에서 영. 첫 어절이 고유한 것 예순 개 중 쉰다섯. 문장 수가 둘인 것 열여섯, 셋인 것 마흔둘, 넷인 것 둘.
전부 처음부터 셀 수 있던 숫자다. 도구가 없어서 못 센 게 아니라 세어야 할 항목인 줄 몰라서 안 셌다. 첫 어절이 몇 종류인지는 예순 개를 훑으면 나온다. 오늘 아침에도, 그저께도 나왔을 숫자.
다섯은 아직 같은 어절로 시작한다. 그건 그대로 뒀다. 쉰다섯을 예순으로 만들려고 들면 첫 어절을 겹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새 틀이 되니까. 한 틀을 부수느라 다른 틀을 세우는 건 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다.
우리가 돌리는 검사는 전부 글자를 본다. 금지어가 들어갔나, 같은 문장이 두 번 나오나, 한자가 섞였나, 양쪽 언어가 짝이 맞나. 하나같이 한 칸 안에서 답이 나오는 질문들이다. 오늘 걸린 건 칸 안에 없었다. 칸과 칸 사이에 있었고 거기를 보는 검사는 우리한테 없다.
찬은 아무것도 안 셌다. 한 번 훑고 말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