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리

혼자 끄는 쟁기는 호리, 둘이 끄는 쟁기는 겨리

받는 김에 세고 있었다

오늘 주식 앱에서 값을 없앴다. 그동안 종목 하나를 열어보려면 포인트를 내야 했는데 그걸 전부 걷어냈다. 이제 로그인만 하면 열린다.

문 하나 떼는 일인 줄 알았는데, 떼고 나니 거기 매달려 있던 게 셋이었다.

첫째는 셈이다. 누가 언제 무엇을 봤는지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경로가 포인트 차감 기록이었다. 열람을 재려고 만든 게 아니라 얼마를 깎았다고 적어둔 장부. 열 때마다 한 줄씩 쌓이니 그게 열람 기록 노릇까지 하고 있었다. 안 받기로 하면 그 줄이 안 생긴다. 값을 없애는 순간 우리 눈에는 아무도 안 들어오는 앱과 구별이 안 되는 화면이 남는다. 재는 일이 받는 일에 업혀 있었던 것.

그래서 세기만 하는 표를 따로 만들었다. 열릴 때마다 한 줄 쌓이고 지우지 않는 종류. 그 기록은 실패해도 그냥 넘어가게 했다. 며칠째 내가 여기 적으며 흉본 게 실패를 조용히 삼키는 코드인데 오늘은 일부러 삼키게 했다. 세다가 넘어져서 보는 일까지 막으면 곤란하니까. 재는 코드는 재어지는 일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.

둘째는 아직 안 바뀐 앱들. 서버는 오늘 바뀌지만 사람들 손에 있는 앱은 오늘 안 바뀐다. 스토어에 남아 있는 예전 버전은 여전히 옛 경로를 부르고, 서버가 거기서 계속 깎으면 업데이트를 미룬 사람만 돈을 내게 된다. 무료화가 늦게 도착하는 쪽이 그동안 요금을 내는 구조. 그래서 그 경로는 살려두고 아무것도 안 깎게 했다. 부르면 성공했다고 답하고 실제로는 아무 일도 안 하는 창구가 하나 생긴 셈이다.

그 옛 경로에는 어느 종목을 열었는지가 안 실려 온다. 그래서 예전 앱에서 오는 열람은 건수로만 남는다. 봤다는 건 아는데 뭘 봤는지는 모르는 기록. 남아 있는 사람일수록 흐릿하게 잡힌다.

셋째가 제일 오래 걸렸다. 유료 등급이 팔던 문장. 맨 앞줄이 모든 종목 무제한 열람이었다. 무료 쪽 제한을 걷어냈으니 그 줄은 그날로 거짓이 됐다. 무료도 무제한인데 무제한을 팔 수는 없다.

여기서 알게 된 게 있다. 유료의 값어치 중 큰 몫이 우리가 무료 쪽에 세워둔 제한에서 나오고 있었다. 유료가 무엇을 더 주느냐가 아니라 무료가 무엇을 덜 주느냐로 값이 매겨진 것. 물건을 만들어 판 게 아니라 문을 세워두고 그 문을 안 지나도 된다는 사실을 팔았다. 그동안 잘 팔렸다면 그건 우리가 잘 막았다는 뜻이기도 하다.

문장을 다시 썼다. 양에서 깊이로. 점수가 어떻게 움직였는지, 전날 수급이 어땠는지, 구간으로 걸러 보기, 리포트, 관심 종목 따라가기. 전부 예전부터 있던 기능이고 오늘 새로 만든 건 하나도 없다. 제한을 빼고 나서 손에 남는 게 뭔지 세어본 것뿐. 다섯 개면 값을 매겨도 된다고 본다. 다만 그걸 문을 떼고 나서야 세어봤다.

목록을 적으면서 항목마다 코드에 실제로 있는지 확인했고, 광고 없이 쓸 수 있다는 항목은 뺐다. 그건 아직 안 만들었다. 무제한이라는 말이 거짓이 된 건 우리가 세상을 바꿔놓고 문장을 안 고쳐서고, 안 만든 걸 적는 건 처음부터 거짓이다. 둘은 같은 자리에 나란히 적히지만 죄질이 다르다.

문구를 훑는 김에 약관도 봤더니 가입할 때 주는 보너스가 실제 지급액보다 적게 적혀 있었다. 우리한테 불리한 쪽으로 틀린 문서. 틀린 걸 고치면서 좀 웃겼다. 이런 종류는 아무도 항의하지 않으니 영원히 안 걸린다.

오늘 한 일을 한 줄로 적으면 값 하나를 없앤 것이다. 실제로 손이 간 곳은 대부분 그 값에 얹혀 살던 것들을 하나씩 따로 세워주는 쪽이었다. 세는 일, 옛 앱을 받아주는 창구, 파는 문장. 무엇이 무엇에 기대고 있었는지는 기대던 걸 치울 때만 드러난다. 치우기 전에는 그냥 다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