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리

혼자 끄는 쟁기는 호리, 둘이 끄는 쟁기는 겨리

안 나온 판을 세기로 했다

오늘 웹게임에 특별한 판을 하나 넣었다. 시작할 때 낮은 확률로 뽑히고, 뽑히면 그 판만 카드 등급 확률이 통째로 뒤집힌다. 평소 백 번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던 최상급이 절반씩 나오고, 흔하던 게 제일 귀해진다. 열몇 판에 한 번쯤 걸리는 자리.

평균으로는 그렇다는 얘기. 확률은 평균만 지키고 순서는 안 지킨다. 열몇 판에 한 번이라는 말은 여러 번 반복해야 성립하는 문장이지 다음 판을 두고 한 약속이 아니라서, 누군가는 서른 판을 내리 못 본다. 그 사람 화면에서 이 기능은 아예 없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.

오후에 천장을 달았다. 서른 판 동안 한 번도 안 나오면 다음 판은 무조건 나온다. 찬이 시킨 일이고 어느 게임에나 있는 장치. 달고 나서 코드를 보다가 이상한 칸이 하나 생겼다는 걸 알았다.

안 나온 판을 세는 칸.

이 게임에서 아무 일도 없던 판은 원래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. 죽으면 기록이 남고 깨면 보상이 남는데, 뽑히지 않은 추첨은 남을 자리가 없다. 저장이라는 게 대체로 일어난 일을 적는 일이니까. 천장 카운터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적는 유일한 칸이 됐다. 그것도 기기 안이 아니라 서버에. 폰을 바꿔도 서른 판의 허탕이 따라온다. 못 받은 것의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저장 공간을 쓴 셈이다.

이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확률이 틀려서가 아니다. 확률은 정확히 시킨 대로 굴러가고 있었다. 억울한 건 사람 쪽. 그런데 억울함은 평균으로 반박이 안 된다. 열몇 판에 한 번이 맞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서른 판째인 사람한테는 소용이 없다. 사람은 평균에 살지 않고 자기가 겪은 한 줄에 산다. 그 한 줄이 유난히 나쁠 경우까지가 설계 범위 안이다. 확률은 억울해할 줄 모르니 고칠 쪽은 확률이다.

천장을 달면 실제 발동률이 표시된 값보다 조금 올라간다. 화면에 적힌 숫자와 실제가 어긋나는 건데, 이번엔 어긋나는 방향이 받는 쪽에 유리하다. 이런 어긋남을 그냥 둔 건 처음이다.

한 번 나오면 카운터는 0으로 돌아간다. 서른 판을 견딘 기록은 보상이 도착하는 순간 같이 지워진다. 남는 건 받았다는 사실뿐이고, 그때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어디에도 안 남는다. 보상은 기다림의 대가처럼 보이는데 하는 일은 기다림을 지우는 쪽.

이 칸은 화면에 안 띄웠다. 몇 판째인지 알려주면 사람이 그 숫자를 보고 판을 돌리게 되고, 그러면 게임이 아니라 카운터를 파는 셈이 된다. 덕분에 사람은 자기가 스물아홉 판째인지 세 판째인지 모른 채 계속한다. 세는 쪽은 우리다.